22일(현지 시
22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난 오지 오즈번이 5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고별 공연에서 박쥐 모양으로 장식된 왕좌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출처 블랙 사바스 X “헤비메탈의 아이콘이던 ‘마왕(Prince of Darkness)’이 우리 곁을 떠났다.”(영국 일간 가디언) 1970년대 하드록 시대에 헤비메탈의 탄생을 이끈 영국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리드보컬 오지 오즈번이 22일(현지 시간) 고향 버밍엄에서 숨졌다. 향년 77세.고인의 가족은 이날 “말로 전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오지가 떠났음을 알린다”며 “그는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눈감았다”고 밝혔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오즈번은 2020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뒤 투병해 왔다.1948년 버밍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힘겨운 유년기를 보냈다. 집은 실내 배관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난독증 탓에 학교도 15세에 중퇴했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고, 절도로 수감된 적도 있다.하지만 1969년 21세에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와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 드러머 빌 워드와 블랙 사바스를 결성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이듬해 발표한 데뷔 앨범 ‘블랙 사바스’는 헤비메탈의 문을 열었단 평가를 받는다. 2번째 앨범 ‘패러노이드(Paranoid)’도 헤비메탈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명반으로 꼽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비평가들의 냉대를 받았지만, ‘아이언맨(Iron Man)’ ‘워피그스(War Pigs)’ 등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찬가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오즈번은 거칠지만 짜릿한 목소리와 강렬한 무대 장악력으로 스타가 됐다. 하지만 불성실한 태도와 동료와의 불화로 1979년 밴드에서 해고당했다. 이후 1980년 ‘블리자드 오브 오즈(Blizzard of Ozz)’를 시작으로 솔로 앨범 13장을 발표하며 1억 장 이상 판매량을 기록했다.고인은 기행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자주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1981년 콘서트에서 팬이 던진 박쥐를 물어뜯은 일화는 두고두고 시끄러웠다. 오즈번은 훗날 “고무 장난감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무대 밖에선 의외로 가정적이고 소박했다. 2002∼200 1979년 12월4일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1차 공판을 시작으로 12월18일 9차 결심의 사형 구형까지 ‘10·26 사건’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시종일관 의연한 태도로 자신의 ‘민주혁명 성공’을 주장했다. 어느날 재판정에서 피고인석으로 다가오는 가족들을 보고 환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김재규. <격동의 80년대> 중에서 “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갑니다. 나의 부하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1980년 5월24일 오전 서울구치소 사형장에 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두 마디다. 불과 7개월 전인 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형이 집행된 그의 죄명은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 미수다. 국가의 헌정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려는 내란을 목적으로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김재규는 ‘박정희 유신 독재 종식과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법정에서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1심(1979년 12월20일)과 2심(1980년 1월28일) 선고는 모두 사형이었다. 1980년 5월20일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한 지 나흘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형장에서 생을 마감한 지 45년 만인 2025년 김재규의 내란 사건이 법정으로 다시 소환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지난 16일 김재규 재심 사건의 첫 재판을 열었다. 김재규의 유족들이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만이다.앞서 2020년 5월 유족들은 ‘10·26 사건’ 재판이 졸속으로 이뤄졌고, 변호인 조력권이 침해된 데다, 수사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를 심리한 서울고법은 5년 동안 고심을 거듭한 끝에 ‘수사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인정된다’는 사유로 지난 2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의 재항고를 대법원이 기각하면서 김재규의 재심 개시는 지난 5월13일 최종 결정됐다. ‘10·26 사건’ 발생 45년 만으로, 공교롭게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재판을 받는 해에 나온 것이다.45년 만에 법정에 제출된 김재규의 ‘항소이유서’반세기에 가까운 시차를 두고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두고 2025년 서울
22일(현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