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오수 진성불교조각 공방의 김진성 작가 인생
임실 오수 진성불교조각 공방의 김진성 작가 인생 이야기▲ 임실 오수 한암리 불교목조각 공방 김진성 작가ⓒ 이완우지난 19일, 임실 오수면 한암리의 전통 목조각 장인의 공방을 찾았다. 작업실에서 김진성(62) 작가가 불상 작업에 열중하다가,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다.공방의 전시실, 김진성 작가는 백제 관음보살입상 작품 앞에 섰다. 이 작품은 1907년에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후, 일본으로 반출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작가가 목불로 2021년에 복원해 본 것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 보병을 든 높이 28cm의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은 7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인자한 미소의 표정, 어깨·허리를 살짝 비튼 몸매, 천의와 구슬 장식의 세련된 모습이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 준다. ▲ [왼쪽] 백제 관음보살입상 복원 목불(38×38×79, 단위 cm), [오른쪽]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사진 인용)ⓒ 이완우작가는 일본에 빼앗긴 채 반환되지 않고 있는 이 문화유산이 우리나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불상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목불로 복원해 보았다. 오른손 팔뚝 아래로 늘어졌을 천의 부분을 되살리고, 불상 머리 후면에 화염 문양 광배를 복원하였다. 아!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미소가 백제의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팔이 떨어져 나간 진구사지 철불도 상상해 복원김진성 작가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오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종합직업학교 목공예과를 수료(1981년)하였다. 작가는 목공예가 적성에 맞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 이름을 지우개에 도장처럼 파서 하나씩 나눠줬다. 기술 배우러 서울 가는 열차 안에서, 아버지 도장 뒤에다 자기 이름을 새겼다. 그때 만든 도장을 지금도 인감도장으로 쓰고 있다. 약간 삐뚤삐뚤한 글씨체인데, 전각 전문가도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한다.직업학교에서 목공예를 익히고, 목조각을 수출하는 회사에 기술자로 다녔다. 얼마 후 독립하여 작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사업이 잘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업보다는 목불 조각의 매력에 빠져들었다.우연히 충남 금산에서 활동하는 전기만(1929~ ) 목조각 명인의 작업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70세의 전기임실 오수 진성불교조각 공방의 김진성 작가 인생 이야기▲ 임실 오수 한암리 불교목조각 공방 김진성 작가ⓒ 이완우지난 19일, 임실 오수면 한암리의 전통 목조각 장인의 공방을 찾았다. 작업실에서 김진성(62) 작가가 불상 작업에 열중하다가,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다.공방의 전시실, 김진성 작가는 백제 관음보살입상 작품 앞에 섰다. 이 작품은 1907년에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후, 일본으로 반출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작가가 목불로 2021년에 복원해 본 것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 보병을 든 높이 28cm의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은 7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인자한 미소의 표정, 어깨·허리를 살짝 비튼 몸매, 천의와 구슬 장식의 세련된 모습이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 준다. ▲ [왼쪽] 백제 관음보살입상 복원 목불(38×38×79, 단위 cm), [오른쪽]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제공 사진 인용)ⓒ 이완우작가는 일본에 빼앗긴 채 반환되지 않고 있는 이 문화유산이 우리나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불상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목불로 복원해 보았다. 오른손 팔뚝 아래로 늘어졌을 천의 부분을 되살리고, 불상 머리 후면에 화염 문양 광배를 복원하였다. 아!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미소가 백제의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팔이 떨어져 나간 진구사지 철불도 상상해 복원김진성 작가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오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종합직업학교 목공예과를 수료(1981년)하였다. 작가는 목공예가 적성에 맞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 이름을 지우개에 도장처럼 파서 하나씩 나눠줬다. 기술 배우러 서울 가는 열차 안에서, 아버지 도장 뒤에다 자기 이름을 새겼다. 그때 만든 도장을 지금도 인감도장으로 쓰고 있다. 약간 삐뚤삐뚤한 글씨체인데, 전각 전문가도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한다.직업학교에서 목공예를 익히고, 목조각을 수출하는 회사에 기술자로 다녔다. 얼마 후 독립하여 작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사업이 잘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업보다는 목불 조각의 매력에 빠져들었다.우연히 충남 금산에서 활동하는 전기만(1929~ ) 목조각 명인의 작업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70세의 전기만 명인은 흙으로 부처님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때 26살 김진성 청년은 인생의 목표가 확실해졌다. 나도 저 나이까지 저렇게 멋있게 조각할 수 있겠구나. ▲ [왼쪽] 진구사지 철불 복원 목불 (71×45
임실 오수 진성불교조각 공방의 김진성 작가 인생